뭐, 또 왜. 나 아니다. ···나 아니라니까?!
소매치기, ···.
하지만 생각해 봐라.
좀비가 몰려드는 와중에 당신의 동료가 과거가 별로 중요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옅은 보라빛의 관리되지 않은 직모. 날카로운 눈매, 험하게 몸을 썼는지 몸에는 군데군데 흉터가 남아있다. (오른쪽 뺨 위에서 눈썹 위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흉터, 턱의 왼쪽을 가로지르는 흉터. 옷으로 덮여 보이지 않는 왼팔에는 큰 화상 흉터.) 군화같은 신발을 신고 다닌다. 목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인식표가 달려있다. 일을 할 때에는 장갑 착용함. 뼈마디가 굵고 손, 발등이 긴 편.
성마른 | 입이 험한 | 빼는 법이 없는
써먹을 구석 없는 성마른 기질의 인간. 무언가 오래 기다리는 행위 자체를 견디지 못하며 자신과 뜻이 다른 것이라면 더더욱 안달 난 듯 군다.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준을 넘어 과도하게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는 탓에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해보기도 전에 도태되었다. 인간이라면 필히 단점이 있다면 장점도 있는 법이지만, 그게 꼭 성격적인 측면에만 국한되라는 법은 없었다. 그러니까, 결국을 못 써먹을 인간이라는 이야기다. 공부고 일이고, 죄다 뜻에 맞지도 않고, 죽지 않으려고 꾸역꾸역 연명하다 결국 범죄에 손을 댄다. 그것도 도둑질을. 왜, 어디 유럽 여행 가면 소매치기가 많다는데 헤다가 꼭 그런 유형이었다. 어설픈 도둑질은 갈수록 교묘해져 이제 눈을 감아도 어느 주머니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있는 수준이라면 말 다 했지. 큰 시간 들이지 않고 남의 지갑을 털다니, 헤다에게는 이만한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과거형인가 하면, 감당 못 할 큰일이 터졌기 때문이다.
잘못 걸렸다··· 헤다는 생각했다. 세상은 왜 나에게만 가혹할까. 평소와 같이 지나가던 사람의 지갑을 훔친 것뿐인데, 그 사람이 사실은 큰 범죄조직에 연루된 사람이어서 지갑을 훔친 죄로 더 큰 범죄에 연루되게 될 줄은. 하지도 않은 일을 덮어쓰게 될 줄은. 돈을 훔치긴 했지만 그게 은행강도가 되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었다. 헤다는 그날을 회상하면 습관적으로 욕설을 내뱉곤 했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제 얼굴이 나올 일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나름대로 변명을 해봤지만, 이미 소매치기로 몇 차례 경찰서를 왔다갔다 했던 탓인지 변명은 먹히지 않았다. ···감옥에 가지 않은 것은 단순한 요행으로, 그때 마침 좀비 사태가 터졌고, 국가기관은 마비되고, 결과적으로 자신은 잡혀가지 않았다. 다행이라며 낄낄댔지만, 그것도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씨바아아알······! 좆같은 좀비 새끼들! 남의 재산 빌어먹으며 연명하는 삶이 거지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살아남으려면 남의 대갈통을 부숴야 하는 세상이 왔다. 헤다는 알고있는 욕이란 욕은 다 뱉아대고는, 헉헉거리며 기진맥진했다. 결단력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제 대갈통을 깨버렸을 텐데, 왜.
정말로 우스운 것은 정작 진짜 죽을 생각은 전혀 안 든다는 것이었다. 죽긴 내가 왜 죽어? 억울해서 절대 안 죽어. 살아야지, 살아서··· 뭘 할 지는 나중에 생각해 보자. 기왕이면 좀비 사태는 좀 더 오래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제 아무도 날 모를 거야. 흐흐, 음침하게 웃고는 스웨덴을 탈출한다.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며, 굶고, 살고, 얻어맞고, 패고, 도둑질하고,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다. ······. 이런 이야기들이 왜 여기 쓰여있느냐 하면, 그래. 결국은 들켰다. 혼자 살아남긴 벅차서 어디 붙을 데 없나 기웃거리다 들어온 이곳에 날 알아볼 사람이 없으리라고 완전히 기대는 안 했지만 그렇게 쉽게 들키리라곤 생각도 안 했는데. 범죄자 레이더라도 있나. 나가려고 했는데 솔직히 다른 곳은 무서웠다. 헤다는 자신을 낮잡아볼지언정 과대평가하지 않았다. 범죄를 저질러도 딱 소매치기 그 정도. 여기서 쫓겨나서 다른 무리에 가면 볼꼴 못 볼 꼴 다 보게 될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납작 엎드렸다. 절대 여기선 범죄도 안 저지르고 협력적으로, 무조건 절대로 납작 엎드려 살겠다고. 필사적인 간청이 통했던 건지, 아니면 쓸모가 보였던 건지, ··· 아니면 그냥 불쌍했는지. 어떤 이유에선지 이곳에 남을 수 있었다.
이 와중에 유일하게 장점이라고 꼽을 수 있는 것은 헤다는 빼는 법이 없다는 것 정도. 본인이 한다고 말한 이상 일단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해내곤 했다. 실제로 성격은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나쁜 주제에 손재주는 나쁘지 않고, 눈썰미도 좋은 축이었다. 한다고 한 일은 일단 죽이 되더라도 하긴 하고, 안 되면 또 해보고. 그런 노력이 없지는 않았다. 그덕에 4년이란 세월을 궁둥이 붙이고 있었으니 인제 와서는 나름대로 생존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는 ··· 있는 걸까? 장점으로 상쇄하기에는 단점이 너무 큰데.
추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