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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초세계급간호사벡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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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OT
출신프랑스
탄생일 · 연령2020년 10월 29일 (33세)
신장 · 체중175cm, 60kg
혈액형Rh+ O형
가족 관계배우자 모치즈키 유리​
직업간호사
학력엑스 마르세유 대학교 호스피스 간호학 석사
좋아하는 것커피
싫어하는 것악세사리
별명노른자
MBTIENFJ
메인 컬러#C3ADDA #F9D99C
성우
한국여기까지 보시다니 대단하시군요!
일본그러나 어떠한 정보값도 없었습니다.
1.개요

Avez-vous déjà pensé à la mort humaine ?
인간다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2049. 12. 최후 변론 中

초세계급 간호사.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로 근무 중이다.

근무지는 본인이 설립한 프랑스 소재지의 병원으로 병원 운영비는 수익과 기부로 이루어져 있는 듯.

초세계급으로 발탁되는 사건 이후, 패시브 머신 · 약물 등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1]​를 받았다. 프랑스 국영 방송 프랑스 텔레지옹(France Télévisions)에서 한 짧은 인터뷰로 현재는 어느 정도 의문이 해소된 상황이나 관련 문제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과거 행적으로 인한 유명세 덕에 각국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기부금[2]​​으로 세금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냈다는 회계 직원의 일화가 유명하다.

2.생애

프랑스의 항구 도시[3]​이자 가론강 인근에 위치한 보르도 지역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졸업 이전에는 평이한 생활을 보냈다고 본인이 언급한 바가 있으며, 모범적인 생활로 교사와 동급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운동 겸 취미로 고등학교 기간동안 수영을 했다고 하며, 현재도 이 취미는 유지하고 있는 모양으로 관광지에 방문한 사진들 중 가끔 수영복을 입은 차림의 사진[4]​이 공개되기도 했다.

고등학교 진학 중에는 가족 (아버지, 어머니)과 함께 생활했으며 대학교 입학 이후 혼자 지낸 듯. 해당 기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본인이 잘 언급하지 않아 알려진 바가 적으나 고등학교 생활보다는 비교적 조용하게 지냈다는 평.

엑스 마르세유 대학교 학사 졸업 이후 해당 대학 부속 종합 병원[5]​에서 곧바로 근무했으며, 첫 발령 부서는 호스피스 병동이 아닌 일반 외과 병동이었으나 본인이 원해 1년 후 근무지를 변경[6]​하였다. 근무 중 지원 제도를 통해 동시에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석사 졸업 논문 내용은 영국의 의학 저널 LANCET에 기고되었으며 157회 인용되었다.

3.초세계급 간호사
3.1.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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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내용은 인간의 직접적인 살해, 해당 사건에 대한 판결 내용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명세[7]를 얻게 된 것은 석사 졸업 이후인 2048년 9월 경으로 비공개로 이루어지던 재판 내용[8]​이 대대적으로 언론 기사를 타고 대중에게 노출된 사건에서 부터이다. 해당 사건이 어떻게 대중에게 노출될 수 있었는지는 아직까지도 관련된 이야기[9]​가 많으나 해당 기간 동안에는 재판 자체의 내용보다 그의 멀끔한 용모 탓에 관심을 갖는 일반인들이 많았던 것 또한 프랑스 내부에서는 화제였다.

판결이 나기 이전 입에 오르내렸던 탓으로 해당 재판에 임했던 판사 일부 역시 사생활 노출을 겪으며 관련 판결 및 이전 인터뷰[10]역시 며칠 간 프랑스 유명 신문사 1면을 차지했을 정도.

3.2.재판

자세한 내용은 벡터/초세계급 간호사/재판 문서를 확인하십시오.

3.3.현재

그가 행한 행동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일부 인물[11]​들은 그가 유명세만으로 해당 위치를 얻었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행보로 하여금 그는 자신의 뜻을 관철해나가고 있어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공익적인 목적으로 운영되는 병동 V2108 는 사건 이후 꾸준히 진료비 감면 및 무상 혜택을 주며 운영중인 것으로 유명하다. 의료적 판단 하에 치료가 우선인 환자에게는 적극적인 치료를 권유하고 비용적 지원을 해 환자의 삶을 되찾고 정신적 지지를 하는 간호 및 상담 시스템을 도입하여 걸인들의 무덤[12]​[13]​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또한 보수적으로 이루어지던 호스피스 간호 및 완화 의료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함으로써 프랑스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유럽, 전세계적인 공론의 장을 펼침으로써 터부시되던 죽음과 관련된 인간의 시선을 가시화한 데에 대해서는 학계와 의료계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기도 하다.

제도적 미비로 인해 외면받던 사람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누구나 같은 처지[14]​에 빠질 수 있음으로 공감을 이끌어 낸 것에 대해서 그의 행동이 필요악이었다는 의견 역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주제이다. 하지만 관련된 논의에 대하여 도덕 · 윤리적 판단은 항상 선행적으로 우선되어야 하며 그것이 개인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는지, 또한 인간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은 계속해서 의문으로 남는다.

4.관련 인물
4.1.모치즈키 유리(望月 百合)

자세한 내용은 모치즈키 유리​ 문서를 확인하십시오.

4.2.와디 블랑크

2048년 9월 12일, 마르세유 대학교 부속 종합 병원 2108호실에서 사망한 인물. 유망한 사업가였으나 십이지장 파열 수술 도중에 일어난 사고로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얻었다. 대학 부속 종합 병원 내 의료진 판단 하 호스피스 완화 의료 대상자가 되지 못 해 고통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각주14개
  1. [1]프랑스 호스피스 간호사 커뮤니티 오스피스 드 프랑스(Hospices de France)에서 제기된 의혹으로, 이 사건은 일종의 해프닝임이 밝혀졌다. (5회 수정됨)
  2. [2]그 규모가 매년 줄지 않고 비슷한 추세를 유지하는 중인 것임을 내부 정보로 알 수 있었다.
  3. [3]프랑스 남서부 누벨아키텐 레지옹의 지롱드 데파르트망에 속해 있으며, Bordeaux라고 쓴다. 보르도 시 자체는 바다(대서양)와 직접 접하지 않지만 가론강(Garonne)을 통해 진출입이 가능하다.
  4. [4](https://magot.wiki/vector/swim.png). 첨부된 뒷모습 사진.
  5. [5]해당 대학과 부속 병원은 출입 통제가 삼엄한 것으로 유명하다. 2중, 3중으로 경비를 하고 있으며 출입을 위해서 항상 경비원이 신분증을 확인할 정도라고. 해서 해당 병원 내부의 공개된 사진은 매우 드물다. 마르세유가 항상 테러 위협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듯.
  6. [6]보통 취업 이후 1년 이내에 부서를 변경하는 일은 흔하지 않으나 본인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라고.
  7. [7]재판 당시에는 그를 찍기 위해 따라다니는 파파라치가 하도 많아 파파라치 컷에 커다란 카메라를 든 파파라치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찍힌 것이 웃음 거리가 되기도 했다. 해당 기자는 이후 재판 당시 벡터 측 변호사의 법인 내부를 몰래 취재하려다 경찰에 체포되는 등의 사건으로 그의 변호사에게 기소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취하된 상태이다.
  8. [8]재판 내용이 비공개로 진행되어 어떠한 이야기가 오갔는지 자세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공개된 판결문에 대한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본인 역시 적극적인 무죄 주장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사료되나 이미 당사자는 사망한 상태이며, 환자의 가족들이 처벌 의사가 강하지 않았던 점. 또한 당사자의 유언과 평소에 밝혔던 의사 등이 무죄 근거로 사용되었음이 나중에 알려지기도 하였다. 재판 이후 본인이 2년간 적극적인 변론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켜왔던 탓에 온갖 추측이 난무했던 것과는 대비되는 진실들이 꾸준히 밝혀지고 있다.
  9. [9]재판 판결에 대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그의 변호사 또는 본인이 일부러 흘렸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10. [10]해당 재판의 주심을 맡은 인물로 재판 도중 이루어지는 사생활 침해가 심각해 우려 차원에서 공영 방송에서 한 인터뷰가 있다. 하지만 재판 도중에 이루어진 인터뷰 때문에 필요 없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해 본인으로서는 후회한다는 자평이다. 그러나 그 일로 방송 매체에 여러 번 출연하기도 해 두 얼굴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11. [11]대표적인 인물으로 프랑스 외과 의학회장 미셸 푸마가 있다. 유문부 보존 췌두부십이지장 절제술(PPPD)의 권위자로 유명하다.
  12. [12]질환에 걸렸으나 치료할 비용이 없어 병동을 찾는 일부 환자 들의 발길이 없지 않았다. 벡터 본인 역시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매체에 모습을 드러낸 것 역시 이 일과 연관되어 있다는 추측들이 많다.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것에도 일부 한계가 있어 나서서 정부의 지원을 얻어내려는 병원 차원의 노력[13]이 있었다.
  13. [13]노력의 일환은 지극히 프랑스스러운 방식이었다.
  14. [14]문서 내부 벡터/와디 블랑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